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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관리자 / ancc
dooman70@hanmail.net
558
2016-02-11 17:42:12
85
1391
  사랑하면 기도한다
창세기 18:22-33
TS: 사랑하면 기도한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기도에는 5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빈말 반복 단계이다. 신앙의 초보단계로 옹알이 수준이다. 두 번째 단계는 독백 단계이다. 기도는 하지만 믿음이 없이 하는 단계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대화 단계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갖는 단계이다. 신앙이 성숙해 지는 단계이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단계이다.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넘어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 깊은 영성의 단계이다. 성령이 충만한 단계이다. 그리스도와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누린다.
나의 기도의 단계는 어디에 와 있는가? 빈말 반복의 단계에서 더 깊은 영생의 단계로 나아가자.
본문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의 소리를 듣고 중보하며 기도하는 내용이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세분을 극진히 대접했다. 나그네 일행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확인하러 가는 하나님과 두 명의 천사였다. 예수님은 대접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했다. 대접을 잘 받은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 맘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고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며 기한이 되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일행을 전송하러 나갔을 때, 하나님은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을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용서하여 주시고, 의인을 악인과 죽이심은 부당하다”며 “이렇게 세상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협상 아닌 협상을 하면서 의인 열 명까지 내려갔다. 열 명의 의인도 없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더 이상 기도하지 못하고, 자기 곳으로 돌아갔다.
왜 아브라함은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6번에 걸쳐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을까? 단순히 소돔 성안에 조카 롯의 가족이 살고 있어서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아브라함의 기도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카 롯의 구원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고,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죄로 멸망받고 저주 받을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을 위한 기도였다.
이것을 볼 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영혼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의 멸망을 생각할 때, 참으로 자기 일처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것이다. 기도란 말 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 기도이다. 아브라함의 기도에는 이 마음이 있다. 어떤 마음인가?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하면 기도한다.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은 이런 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었는가?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6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을까?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되었을 때에 방문하셨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 후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산 하나님의 아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13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한 언약들을 구체적으로 이루시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개명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무슨 뜻인가? 한 가정의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로, 한 가정의 어머니에서 열국의 어머니로 살라는 뜻이다.
지금 현실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열국의 아버지도 아니었고, 열국의 어머니도 아니었다. 첩에게서 난 자식 하나뿐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부르라고 했을 때, 사라라고 부르라고 했을 때, 믿음이 없으면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열국의 아버지로서의 축복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말씀의 회복이다. 세상에 충만하고,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에는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열국의 아버지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또 본문 18-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개명과 같은 동일한 의미의 말씀을 해 주신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그를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고 했다.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한 만민이 복을 받으려면 누군가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런 마음으로 반응했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앞서 내 백성처럼 생각하며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간절히 6번에 걸쳐 기도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런 기도의 흥정을 했다는 그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역사의 파트너로 생각하여 그와 함께 고민하며 고통을 나누기를 원했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갖는 이 마음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살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어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만약, 이런 마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말해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화 자체를 하지 않고, 바로 두 천사와 함께 가고자 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로서 책임을 가지고 응답하지 않았다면, 그는 처음부터 조카 롯의 가족과 구원을 위해 결사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14장을 보면 소돔전쟁으로 인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 의해 소돔 성 시민 뿐만 아니라 롯도 포로로 붙잡혀 가는 것을 자기 집에 길리운 군사 318명을 이끌고 롯과 소돔 시민들을 구원해 준 일이 있었다. 6번에 걸친 기도 중에 한번도 롯을 위한 기도가 없을 볼 때, 이미 아브라함은 영적으로 열국의 아버지로서 살고 있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열국의 아버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성도가 가진 권세이고, 축복이다. 영권의 회복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열국의 아버지로 어떻게 살면 되는가? 아브라함처럼 더 큰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열방과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일이다. 디모데전서 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 나라와 민족, 세계 선교, 북한 형제, 노숙자들, 고통 받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형식적인 기도, 남을 판단하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 큰 기도가 아니고 작은 기도이다. 사랑의 기도도 아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러 올라갔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금식과 십일조와 경건한 삶에 대한 고백이었다. 그의 경건한 기도는 매우 형식적이고 남을 판단하기는 기도였음을 알게 된다.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는 세리를 멸시하고 거부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사랑이 결여된 작은 기도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기도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기도는 큰 마음의 기도이고, 큰 사랑의 기도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사랑하고 용서하는 기도이다.
아브라함이 6번에 걸쳐 기도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브라함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한두 번으로 끝날 것 같은 기도는 6번이나 계속된 아브라함의 마음은 한 마디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절규가 있는 기도였다. 이 기도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이요,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독일인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어야 할 유태인 천명 이상을 살린 사람이다. 그 여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독일의 패망 앞에서 유태인 무리들은 쉰들러를 위해 서명한 편지를 전해 주면서, 반지 하나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 반지에는 탈무드 격언이 씌여져 있는데, 그 내용은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가 세상을 구한 자이다’였다. 그러면서 더 살릴 수 있었는데, 나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했는데, 쓸데 없는 곳에 돈을 많이 썼어, 이 차를 카트에서 주었으면 10명은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이 핀은 금으로 되었으니 2명은 더 살릴 수 있는데--한 생명을 향한 쉰들러의 외침을 듣게 된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의 기도였다. 절규였다.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의 회복이다. 어떤 기도인가? 아브라함처럼 영혼 구원을 위한 간절함이다. 한두 번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내가 품고 기도해 줄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생각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중에 롯의 가족들을 구원하셨다.
우리의 기도의 영역을 좀 더 넓혀가기를 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기도의 그물 안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 선교를 품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작지만 큰 교회가 될 수 있다. 작지만 큰 가정이 될 수 있다. 작지만 큰 기업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셨듯이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신다. 사랑으로 기도하자.
(코람데오 닷컴에서 펌)

열방지기 안병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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