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유럽기행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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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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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칼에서 4일간 머물면서 얻었던 좋은 경험은 성모마리아 기념 교회와 광장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천주교의 의식을 보는 것이었다. 방문하던 날이 마침 8월 12일이라 매달 13일에 성모마리아 출현한 것을 기념하여 미사가 미리 하루 전에 예행연습 성격을 가지고 많은 관광객들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되고 있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 큰 광장에 한 줄의 고행길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수행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약 200m 이상의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렇게 하는 것이 죄를 사함 받은 길이라고 교리에 적은 천주교 의식은 과연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두고 백성들을 가르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행하도록 하는 것일까? 무릎에 보호대를 달고 함께 온 가족이나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기어가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광장 뒤쪽에서 성당 앞 강단이 있는 자리까지 계속해서 무릎으로 가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 어떤 죄도 다 용서할 수 있고, 그것을 실례로 보여 준 것이 한편에 있는 강도를 천국으로 보내는 주님의 말씀이었는데(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천주교는 신자들의 고통을 하나의 수행이라는 허울 좋은 구경꺼리로 만들었다. 천주교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고행을 큰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는 중세기의 타락한 모습의 재현임이 분명했다. 라테란의 성 요한 대 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의 왼쪽의 길 건너에 있는 건물이 '성 계단 성당'이다 이 성당은 예로부터 성삼일 금요일에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순례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예수님이 올라가셨던 계단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를 성 계단이라 부르며, 성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있던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관저에서 옮겨 온 것이다. 모두 28개의 대리석계단 위에는 아직도 몇 군데에 예수님께서 흘리셨던 핏자국이 보관되어 있어서 입맞춤을 하는 광경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교황 전용의 소 예배당이 되었고, 일반 신부들은 교황을 알현하기 위하여 무릎으로 이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를 고행으로써 극복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어느 날 마르틴 루터도 무릎으로 이곳을 오르고 있었다. 오르던 도중에 그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을 기억하고, 죄는 고행으로써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일어나 내려와 스위스로 도망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이 성 계단은 16세기말 식스토5세 교황 때, 성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나무를 계단위에 덮어씌웠다. 교황은 재위시 성 금요일에 이곳에 와서 무릎으로 성 계단을 기어 올라가 그 위에 있는 소성당에서 십자가 경배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종교개혁의 손이 미치지 못한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천주교가 대세(국민의 80%이상)를 이루면서 중세시대의 잘못된 의식을 그대로 반복하며 신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종교생활을 하도록 이끌고 있다. 한국 천주교도 여전히 신자들에게 고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자선을 베풂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한발자국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로자리오 바티마 성당 뒤편에 서 있는 대형 예수님의 십자가상은 하나의 상징적인 조형물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와 사죄의 은총을 무색케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교회도 오랫동안의 전통과 관습이 성도들에게 잘못된 종교생활로 고착화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살아 있는 기독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동력이 되어야 한다. 미신적이고 맹신적인 천주교의 전통이 교회 안까지 스며들어 생명력 없는 죽은 시체와 같은 의식적인 예배와 봉사,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인간의 고행이나 참선이라는 수행의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상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헌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며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의 사역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시촌에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성경을 가르치며 십자가의 사랑과 대속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사역은 그 어떤 화려한 천주교 의식과는 비교될 수 없는 복음의 진수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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