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유럽탐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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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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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독의 상징이 되는 베를린 (Berlin)를 방문하였다. 정말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 베를린은 통독의 수도이며, 200여 종족에서 약 380만 명이 현재 거주하고 있다. 베를린은 학문과 예술의 도시로서 수백 개의 갤러리와 박물관과 미술 전시회가 있다. 13개의 크고 작은 대학교와 수많은 대학생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며 공부하고 있다. 나무와 운하와 강, 호수, 공원이 많다. IT창업 회사가 몰려들고 있으며, 외국인 커뮤니티가 확장됨에 따라 국제적인 허브로 급속히 변모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이 개장될 예정이어서 베를린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스트사이드(East side) 갤러리,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1961~1989)은 오랫동안의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장소이고 또한 기념비적인 통독의 상징적인 공간으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그 때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있다. 대부분의 동서로 나누어져 있는 베를린의 장벽은 다 허물어져 하나가 되어 있는데 지금 일부 역사적 상징으로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은 알록달록하게 다양한 그림들로 채워졌다. 그 그림들도 대부분은 나뉘어져 있을 때의 역사적인 사건과 통독 과정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아 그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베를린 장벽을 보면 마치 그림 전시관에 온 느낌이다. 1961년 8월 13일, 통독은 155km에 달하는 가시철조망을 걷어내고 벽돌로 이중 장벽을 만들었다. 동독 사람들은 참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고, 강물을 헤엄쳐 건너고, 강물 밑으로 잠수하고, 열기구와 행글라이더를 타고, 그리고 육로를 통해 목숨을 담보하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엔진을 개조해 엔진 옆에 아이를 끼워 탈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휴가를 이용해 이웃 헝가리나 체코, 오스트리아를 통해 독일 남부로 넘어온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동독 전 지역에서 시위대가 일어났다. 1989년 10월 18일에 동독의 수상이었던 호네커가 전격사임을 발표하고 물러났다. 1989년 11월 9일 큰 위기에 몰린 동독 정부는 공보비서 샤보브스키(Günter Schabowski)가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모든 동독 시민들이 당장 여행비자 없이 ‘지금 즉시(absofort)’ 국경을 넘을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큰 실수였다. 곧 이어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는 방송국의 긴급 뉴스가 전파를 탔다. 결국 1989년 11월 9일,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독일통일은 이루어졌다. 1990년 10월 3일에 온 국민의 소원이었던 독일은 합법적으로 통일 국가가 되었다. 우리의 조국 남북한은 언제 통일이 될까?

  체크 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장벽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통일이 되던 1989년 까지 베를린은 장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이때 서로 왕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크 포인트 찰리를 통과해야 했다. 박물관이 세우진 곳과 건물은 그 당시 검문소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우리나라 판문점과 같은 곳이다.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 당시의 베를린 장벽의 감시의 삼엄함과 분단의 흔적과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이 프랑스의 개선문처럼 광장 한 곳에 웅장하게 서 있다. 이 문은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관문을 본떠 만들었는데 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의 벽면을 연상시키는 조각들로 장식하였다. 1780년대 베를린을 새로운 아테네로 건설하겠다는 프로이센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베를린 한복판에 개선문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 위에 세워진 승리의 여신상은 프로이센의 영광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되고 있다.

  참 의미 있는 곳은 바로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에 대한 유대인 추모 기념비 (Holocaust Memorial)다. 큰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베를린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이 기념비에는 독일인들 가슴에 ‘우리가 가해자’ 라는 미안함과 후회가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88년 독일 총리가 유대인들에게 행한 만행을 사죄했다. 통독 10년 뒤 1998 년 유대인 추모에 대한 법안이 독일 의회에서 통과되어 세우게 되었다. 이 기념비는 2003 년부터 공사가 착공되어 독일 항복 60주년, 곧 유대인 해방 60주년을 기념한 2005년에 완공되었다. 이 공원에 세워진 2711개의 홀로코스트 기념 돌비는 큰 의미가 있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는 사죄이며, 유대인에게는 위로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더 나아가 독일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런 죄악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더 나은 아름다운 독일을 건설하겠다는 열정이 담겨져 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이러한 사죄의 마음을 담은 기념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기독교적인 마인드가 있는 국민은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지만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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